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체코 프라하의 심장, 카를교: 전설 속의로의 여정

by 칼럼니스트 렌 2024. 1. 5.
728x90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을 도착한 외국인들이 가장 놀라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도시를 가로지르는 커다란 한강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강 주변에 대도시가 자리잡는 경우는 많지만 한강처럼 넓은 강이 수도를 가로지르는 경우는 흔치 않다고 합니다. 체코의 수도 프라하도 한강만큼 넓은 강은 아니지만, 블타바 강을 중심으로 도시가 발달되어 있는데요. 서울의 한강에 31개 다리가 있듯이 프라하의 블타바 강에도 여러 다리가 건설되어 있습니다. 그런 여러 다리 중에서 가장 유명한 다리라면 누가 뭐래도 카를교가 제일이라고 할 수 있죠.

카를교는 프라하의 심장과도 같은 곳으로 프라하의 역사, 문화, 그리고 예술을 담고 있는 장소입니다. 중세 시대에 건설된 이 다리는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이 프라하를 상징하는 장소로  프라하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반드시 경험해야 할 명소로 손꼽힙니다.

 

카를교로 가는 길

 

프라하의 카를교로 가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는데요. 트램이나 지하철같은 대중교통이나 도보를 이용하는 방법이 가장 일반적입니다. 우선 트램의 경우, 카를교를 가려면 17번, 18번, 22번 트램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Karlovy lázně' 또는 'Malostranské náměstí' 정류장에서 내리면 카를교로 쉽게 이동할 수 있습니다. 
지하철의 경우, A 라인(녹색)의 'Staroměstská' 역에서 하차하여 카를교로 걸어갈 수 있습니다. 역에서 다리까지의 거리는 약 10분 정도 소요되며, 이 경로는 프라하의 아름다운 구시가지를 지나가는 코스입니다.
도보로 이동하는 경우에는 프라하의 중심부인 구시가지 광장에서 카를교로 이어지는 코스를 추천드리는데요. 구시가지의 명소들을 지나가며, 중세 시대에서부터 이어온 프라하의 역사와 그 역사가 깃든 멋진 풍경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구시가지에서 걸어서 이동한다면 15분 정도 걸릴 겁니다.

 

카를교에 담긴 여러 이야기들

 

 

카를교는 1357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자 보헤미아의 왕이었던 카를 4세에 의해 건설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원래는 '돌다리' 또는 '프라하다리'라고 불리다가, 1870년에 카를교로 명명되었다고 하는데요. 중세 시대의 건축 기술이 집약된 다리로 프라하의 중심부에서 오랜 시간동안 시민들과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져왔습니다. 
카를교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 중에서 다리를 건설할 때 일어났던 이야기가 유명한데요. 다리의 기초에 달걀과 포도주를 섞었다는 겁니다. 블타바 강의 물살은 매우 거칠어서 다리를 놓을 때마다 강물에 떠내려가 버렸다고 하는데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카를 4세가 백방으로 수소문한 결과 달걀을 다리의 기초가 되는 몰타르에 섞으면 다리가 튼튼해진다는 얘기를 들은 겁니다. 황제는 전국에 있는 달걀을 다 모아서 다리에 붓도록 하라는 명을 내리게 되는데요. 프라하는 물론 전국에서 달걀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프라하에서 북쪽으로 40km 정도 거리에 있는 벨바리(Velvary)라는 작은 마을에서는 달걀이 깨질 것을 우려하여 달걀을 삶아서 보냈습니다. 날달걀이 필요하여 내린 명령에 삶은 달걀을 보낸 것에 대해 프라하에서는 벨바리 마을 사람들을 멍청하다고 비웃게 되었고, 이 일화로 인해 체코에서는 '벨바리 = 멍청이'라는 뜻이 되어버렸죠.
또 프라하에서 서쪽으로 30km 정도 떨어진 운호슈티 마을에서는 날달걀은 명령대로 보냈지만, 황제의 명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여 우유와 치즈까지 보내는 정이 넘치는(!) 행동을 저지르고 말았는데요. 이 역시 벨바리 마을과 같이 웃음거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전국에서 모인 날달걀과 벨바리의 삶은 달걀, 그리고 운호슈티의 우유와 치즈까지 들어간 카를교는 놀랍게도 무너지지 않고 완공되었고 지금까지도 그 자리에서 프라하의 명물로 자리잡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이 일화를 토대로 2023년 벨바리 시청에서는 '삶은 달걀 퍼레이드'를 하자고 프라하 시청에 제안했다고 합니다. 벨바리에서 달걀을 삶아 마차에 싣고 카를교를 건넌 뒤 프라하 시장에게 전달하는 것이였는데요. 프라하시청에서도 이 재미난 이벤트를 찬성하여 2023년 4월 2일 오후 1시에 "삶은달걀 퍼레이드"가 진행됐다고 합니다.

 

쉿, 비밀이옵니다 - 성 요한 네포무크의 전설

 

카를교에는 30개의 조각상이 서 있으며, 각각 독특한 이야기와 전설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조각상 중 하나는 성 요한 네포무크의 상입니다. 성 요한 네포무크의 본명은 얀 벨플린(Jan Belflin)라서 얀 주교로 불리기도 하는데요. 프라하 대학교에서 기독교의 교회법을 공부하다가 이태리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사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1389년 프라하의 요한 젠슈타인 대주교 총대리로 발탁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1393년 보헤미아 왕국의 국왕 바츨라프 4세에 의해 체포되어 3월 20일에 혀가 잘리는 고문을 받고 순교하게 되는데요. 얀 주교가 순교하게 된 이야기에도 한 가지 전설이 있습니다. 
바츨라프 4세의 2번째 부인은 바이에른의 조피 왕비였는데요. 얀 주교는 대주교의 총대리였기 때문에 왕실의 고해성사를 집행하는 신부였고, 조피 왕비의 고해 성사도 담당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 국왕 바츨라프 4세가 얀 주교를 불러 조피 왕비의 고해 내용이 무엇인가에 대해 물어보는데요. 조비 왕비에게 정부가 있을 것이라고 의심했기 때문이었죠. 얀 주교는 가톨릭의 교리에 따라 하느님께 고해한 것을 누구에게도 발설할 수 없다고 왕의 명령을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왕은 자신에게 그 내용을 이야기할 수 없다면 누구 하나의 생명에게 그 내용을 말해보라고 햇고, 얀 주교는 옆에 있던 강아지에게 뭔가 귓속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 모습을 본 바츨라프 4세는 크게 분노했고,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혀가 잘리는 고문을 받고 카를교에서 블타바 강으로 거꾸러 던져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4월 17일 멀지 않은 곳에서 얀 주교, 성 요한 네포무크의 시신이 떠오르게 되는데요. 5개의 별 모양의 빛이 강 위에 떠올라 사람들이 시신을 찾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후, 1683년에 카를교에는 성 요한 네포무크의 동상이 세워지게 되는데요. 카를교의 30개의 조각상 중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동사잉라고 합니다. 5개의 별 모양의 후광과 함께 앞서 말한 전설의 내용이 담긴 2개의 부조가 있는데요. 왼편에는 성 요한 네포무크에게 고해하는 왕비를 뒤로 바츨라프 4세와 그의 개가 조각되어 있고, 오른편에는 거꾸로 메달려 강으로 떨어지려 하는 성 요한 네포무크와 그를 지켜보기를 강요받는 왕비가 조각되어 있습니다. 이 부조에 개와 네포무크 신부의 부분은 유독 반짝 거리는데요. 이 부분에 손을 대고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이뤄진다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카를교를 찾은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손을 대고 소원을 빈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풍경과 자연

카를교를 걷는 것은 프라하의 역사와 예술, 자연의 조화를 느낄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합니다. 다리를 건너는 동안 블타바 강의 잔잔한 물결과 주변의 역사적인 건물들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합니다. 특히 해질 무렵 다리를 걷는 것은 프라하에서 가장 로맨틱한 경험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카를교는 프라하를 방문하는 이들에게 단순한 관광 명소가 아닌, 도시의 영혼을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역사와 전설, 예술이 어우러진 이 다리 위를 걸으며, 프라하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경험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