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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속의 외침: 킬링 필드와 뚜올쓸라엥 감옥을 통해 바라본 캄보디아의 어둠과 교훈

by 칼럼니스트 렌 2024.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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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는 그 평화로운 풍경과 빠르게 발전하는 도시 생활로 많은 이들을 매혹시킵니다. 프놈펜의 활기찬 거리와 아름다운 시골 지역은 방문객들에게 이 나라의 다채로운 문화와 역동적인 현대 생활을 선사합니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풍경 뒤에는 캄보디아가 겪었던 어두운 과거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상처 중 가장 깊은 곳이 바로 킬링 필드와 뚜올쓸라엥(21호 보안감옥, S-21) 감옥입니다.

킬링 필드는 프놈펜 외곽의 조용한 벼랑에 위치해 있으며, 크메르 루주 정권 하에서 무고한 사람들이 대량 학살된 장소로, 지금은 평화롭게 조성된 추모 공원이 되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면 평화로운 자연 속에서도 과거의 슬픔과 고통이 어떻게 깊게 뿌리내렸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뚜올쓸라엥 감옥은 한때 학교였으나, 폴 포트의 정권 아래 감옥으로 변형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고문받고 죽음을 맞이한 장소입니다. 이제는 박물관으로 바뀐 이 감옥은 방문자들에게 당시의 잔혹했던 사건들을 생생하게 전달하며 역사적 교훈을 제공합니다.

안젤리나 졸리, 유엔 난민기구의 특사로서 캄보디아 역사에 깊은 관심을 가졌는데요. 그녀 역시 이곳을 방문한 바 있습니다. 안젤리나 졸리는 "캄보디아의 역사를 마주하는 것은 무척 감동적이며, 우리 모두가 과거의 비극에서 배워야 할 중요한 교훈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녀의 이러한 발언은 킬링 필드와 뚜올쓸라엥 감옥 방문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 두 장소가 단순한 역사적 유적이 아니라 인류 공통의 교훈과 기억을 되새기는 장소임을 상기시킵니다. 이 두 장소의 방문은 현재의 번영과 대조되며, 캄보디아의 과거를 기억하고, 그로부터 얻은 교훈으로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어둠 속의 교훈: 캄보디아 크메르 루주 시대의 역사적 깊이 탐구

 

캄보디아의 역사는 1975년부터 1979년까지 폴 포트와 크메르 루주 정권의 지배 하에 있었던 시기의 비극적인 사건들로 얼룩져 있습니다. 이 4년간, 캄보디아는 극단적인 공산 이상을 실현하려는 시도로 인해 수백만 명의 무고한 시민들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크메르 루주의 목표는 사회를 공산주의 농업 유토피아로 전환하는 것이었으나, 그 과정에서 발생한 인간의 고통과 파괴는 이제 세계 역사상 가장 어두운 장으로 기록되었습니다.

 


프놈펜 외곽에 위치한 킬링 필드는 이 비극적인 시기의 증거 중 하나입니다. 이곳에서는 대량 학살이 자행되었으며, 현재는 수많은 공동 묘지와 추모비가 그 아픔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방문자들은 킬링 필드를 거닐며 당시의 참상을 목격하고, 역사적 교훈을 되새기게 됩니다. 또한, 뚜올쓸라엥 감옥은 한때 평범한 학교였으나, 크메르 루주 정권 하에서 고문과 살인이 자행된 곳으로 변모했습니다. 현재는 박물관으로 개조되어 당시의 고문 도구, 희생자들의 사진, 생존자들의 증언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두치, 본명 깡 겍 이우(Kaing Guek Eav, កាំង ហ្គេកអ៊ាវ), 뚜올쓸라엥(S-21) 감옥의 책임자였던 그는 약 17,000명의 사람들이 이 감옥을 거쳐 갔으며, 그 중 대다수가 고문 후 살해당했다는 사실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되었습니다. 1976년부터 1979년까지, 그가 이끄는 뚜올쓸라엥 감옥은 크메르 루주 정권의 가장 악명 높은 고문 및 처형 센터 중 하나였습니다. 두치는 2009년 캄보디아의 특별재판소에서 재판을 받기 시작하여, 2010년에 반인류 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고 종신형을 확정받았습니다. 이 재판은 크메르 루주 정권의 범죄에 대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으며, 희생자들에 대한 정의를 상징적으로 실현했습니다. 이후 두치는 2018년 10월 20일에 만성 폐쇄성 폐질환이 발견되어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2020년 9월 2일에 병원에서 향년 78세로 병사했습니다. 그의 시신은 캄보디아의 코로나 19 상황이 악화되면서 장례식도 없이 급하게 화장되었다고 합니다.

시드니 셴버그는 1975년 크메르 루주가 프놈펜을 점령할 당시 캄보디아에 있었습니다. 그의 보도는 크메르 루주 정권의 잔혹행위와 캄보디아의 인도적 위기를 국제사회에 알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그의 동료이자 친구였던 캄보디아인 사진기자 디트 프란(Dith Pran,ឌិត ប្រន)의 이야기는 영화 "킬링 필드(The Killing Fields)"의 영감이 되었으며, 캄보디아의 비극을 전 세계에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이러한 구체적인 연도, 통계 및 사연을 추가함으로써 블로그 게시물은 크메르 루주 시대의 비극적인 역사를 보다 생생하고 실감 나게 전달할 수 있으며, 당시의 사건들이 현재에 미치는 영향과 역사적 교훈을 더욱 강조할 수 있습니다.

 

캄보디아의 침묵된 기억: 킬링 필드와 뚜올쓸라엥 감옥의 생생한 증언

 

킬링 필드의 고요한 경관과 뚜올쓸라엥(S-21) 감옥의 음울한 복도는 방문자들에게 캄보디아의 과거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프놈펜 외곽에 위치한 킬링 필드는 조용한 들판과 나무들 사이에 수많은 공동 묘지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방문자들은 이곳에서 스투파를 중심으로 둘러진 대형 유리 케이스 안에 보관된 희생자들의 유골을 마주하게 됩니다. 투명한 벽을 통해 희생자들의 유골과 소지품을 볼 수 있어, 그 시대의 비극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합니다. 이 장소의 고요함 속에서, 방문객들은 수천 명의 무고한 생명들이 어떻게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는지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도심 속 뚜올쓸라엥 감옥은 한때의 학교가 어떻게 크메르 루주 정권의 고문 센터로 변모되었는지 보여줍니다. 방문자들은 한때 교실이었던 방들이 어떻게 고문과 사형의 장소로 변모되었는지 목격하게 됩니다.  각 방마다 전시된 희생자들의 사진과 생존자들의 증언을 통해 그 시대의 공포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곳의 벽은 고통받았던 수많은 영혼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그들의 눈빛은 역사의 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곳에 수감된 사람은 2만명에 달하며 이들 중에 어린아이는 무려 2천여명에 달했습니다.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임산부와 태아까지도 고문과 학살의 대상이었으며, 더욱 끔찍한 사실은 뚜올쓸라엥은 전국에 있던 196곳의 수용소 중 한 곳에 불과했다는 사실입니다. 뚜올쓸라엥 감옥에서 생존한 사람은 겨우 12명에 불과했습니다. 이 12명 중 5명은 8세 이하의 어린이였으며, 성인은 단 7명 밖에 없었고, 이들도 모두 선전용 예술작품 제작이나 실용적 용도를 위해 잠시 살려둔 것 뿐이었습니다.

 

평화를 향한 메아리: 뚜올쓸라엥 감옥과 킬링 필드에서 느끼는 깊은 성찰

 

뚜올쓸라엥 감옥과 킬링 필드 방문은 캄보디아의 어두웠던 과거와 직면하며, 역사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과 미래 세대에 전할 메시지의 중요성을 일깨웁니다. 뚜올쓸라엥 감옥의 음울한 복도와 킬링 필드의 조용한 공간은 과거의 비극을 기억하고,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되새기는 데 필수적인 경험을 제공합니다.

이 두 장소의 방문은 단순한 역사적 호기심을 넘어서, 과거의 비극을 기억하고, 이를 통해 얻은 교훈으로 평화롭고 정의로운 미래를 만드는 데 기여할 책임이 있음을 상기시킵니다. 캄보디아는 이 비극적인 과거를 극복하고 화해와 발전을 통해 더 밝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캄보디아의 경험은 역사적 사건이 현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고, 과거의 교훈을 바탕으로 더 나은 세계를 만드는 데 있어 중요한 참고자료가 됩니다. 뚜올쓸라엥 감옥과 킬링 필드에서의 경험은 우리 모두에게 평화와 인권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귀중한 교훈을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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